출근하자마자 커피를 내린다. 커피를 내리기 위해서는 먼저 커피빈을 갈아야 한다. 그라인더라는 수동 기계에 커피빈을 넣고 한 손으로는 그라인더 몸통 부위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손잡이를 돌린다. 손잡이를 돌리면 "드르르륵, 드르르륵" 소리를 내며 커피빈이 갈리고 몸통 부위에 가루로 모아진다.
커피빈을 갈 때는 미운 대상을 생각한다. 직장 구성원일 때도, 가족 구성원일 때도, 신문 한 켠에서 본 기사 속 인물일 때도, 안 풀리는 사건이나 파렴치한 사건관계인일 때도 있다. 미운 마음을 담아 힘차게 돌린다. 그렇게 갈린 가루는 뜨거운 물을 만나 어느 날은 쓴 맛을, 어느 날은 고소한 맛을, 또 어느 날은 시큼한 맛을 내놓는다. 그 맛을 보며 커피향에 한 번 더 미움을 날려 보낸다. 나만의 아침 루틴(routine)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검찰을 비롯한 수사기관은 어떠한 형태로든 해소되지 못해 응집된 미움이 쏟아지는 공간이다. 수사기관에 내던져진 미움은 '합의', '원상회복', '진심어린 사과 내지 반성' 등을 통해 소멸되기도 하기에, 수사기관은 인력을 충원하고 형사조정 등 여러 제도를 고안하여 사건관계인들의 심정까지 세심하게 살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모든 미움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오히려 이렇게 마련된 제도들을 이용하고자 셀 수 없는 미움들이 개별적으로 해소되는 과정없이 수사기관으로 넘겨지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본다.
최근 어느 변호사님이 TV 강의에서 "사법분쟁이 많아졌다고 법관 등 법조인 수를 증원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왜 분쟁이 발생하는지를 살펴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율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취지로 말씀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법적 해결보다는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미움이 해소될 수 있는 인간관계 회복이 선행되기를 바라는 변호사님의 생각에 깊이 공감한다.
오늘도 나는 사무친 미움 복판에 나를 담근다. 그 미움에 온몸, 온마음이 아파온다. 그 아픔으로도 충분하기에, 짧은 시간이지만 나만의 아침 의식을 통해 개인적인 미움만큼은 내려놓으려 한다. 새로운 미움이 샘솟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한진희 부장검사 (고양지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