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세사기 피해가 심각하게 대두되면서 전세사기 극복사례로 불리는 볼리비아 전세제도에 대한 관심이 일고 있다. 전세제도는 흔히 우리나라의 고유한 제도로 알려져 있지만 볼리비아에도 ‘안티크레디코(Anticretico)’라는 이름의 전세제도가 있다. 부동산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행위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볼리비아의 경제사정과 연관이 있다. 직업이나 은행 잔고 등이 불분명한 경우 볼리비아에서는 공식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우므로 임대인이 큰돈이 필요한 경우 집을 전세로 내주고 임차인에게 받은 전세금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2년~4년 정도의 계약기간이 종료되면 전세금을 세입자에게 돌려준다. 전세금이 일종의 사금융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전세금이 사금융의 기능을 하는 거액이다 보니, 전세금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가 중요하게 대두되었다.

볼리비아는 2006년부터 우리나라의 부동산등기부등본과 유사한 ‘알로다일(Alodial)’이라는 서류에 전세권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기재하고 임대인과 매물정보를 투명하게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전세사기가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볼리비아에서는 임대차계약을 하기 전에 법무부 등기관리소(Derecho Real)에 들러 등기부등본을 조회하고, 매물의 상태를 확인하며, 임대차계약을 하면 등기부에 등록하는 것을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당연한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볼리비아의 사례를 보면서 임대차관계를 정확하게 공시하는 것이 전세사기 예방에 얼마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지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81년에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제정하면서 주거용 건물의 임대차등기가 없는 경우에도 임차인이 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을 마친 때에는 제3자에 대한 대항력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당시에는 주민등록초본을 발급하는 것에 크게 제한이 없었으므로 주민등록제도를 통하여 주택임대차관계의 공시가 어느정도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1991년에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범죄목적으로 악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주민등록법이 개정되면서 주민등록표 열람 및 그 등초본의 교부는 본인과 세대원에 한하여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주민등록표의 열람 및 등초본 교부라는 방법은 일반인에 대한 공시와는 거리가 멀어진 채로 제도를 계속 유지해온 것이다.

임대차관계를 일반인이 볼 수 있는 등기부등본에 기재하지 않고, 불완전한 공시방법인 주민등록제도를 활용하다 보니 이로부터 많은 문제가 파생한다. 경매절차를 진행할 때 가장 임차인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주민등록제도를 활용하고 있는 측면이 크다. 특히 최우선변제권을 가진 소액임차인의 경우는 경매신청등기 전에만 전입신고를 하면 우선변제권을 확보할 수 있으므로, 경매가 임박한 경우 우선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소액임차인이 전입신고를 하는 경우는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경매진행시 소액임차인의 최우선변제권이 복병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금융권에서는 아예 대출을 실행할 때 소액임차인이 거주할 수 있는 방의 수에 최우선변제권을 가지는 금액을 빼고 담보한도를 정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다. 이는 임대차보증금이 가지는 사금융으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제정된 이후 40년이 경과하도록 임대차보증금 보호을 위한 단기처방을 세우는 게 급급하였다. 이제 임대차관계의 공시를 통한 예방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면서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오영나 법무사(대한법무사협회 부협회장·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