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재판에서 있었던 일이다. 의욕에 넘치는 젊은 변호사가 원고대리인이었다. 빚잔치로 야반도주를 한 채무자가 도주 몇 개월 전에 소유하고 있던 대전 소재 땅을 피고에게 처분하였는데, 이 매매가 서로 짜고 한 허위 매매라는 주장이다. 매수인인 피고는 부동산 중개소를 통해 제값 주고 정당하게 매수했다고 펄펄뛰었다. 중개업자가 증인으로 나왔다. 채무자인 땅주인이 적당한 가격에 매도해 달라고 해서 그 며칠 전에 땅을 보러 다니던 피고를 소개하여 정상적으로 매매를 중개했다고 한다. 매도인도 본인은 집이 서울이고 매수인은 대전 사람으로 서로 모르는 관계라고 증언한다. 계좌조회를 하니 매매대금도 정당하게 계좌로 입금되었다. 피고가 토지를 직접 사용하고 있는 사진들도 제출되었다. 결론이 이미 난 듯한데 원고대리인은 의욕 넘치는 초짜 변호사들의 통상적인 특징처럼 교과서에 나오는 신청은 다해볼 요량이다. 짜증 섞인 피고대리인의 불만을 못들은 채 하고 몇 달 동안 신청들을 다 받아주었다. 토지 부근 CCTV 조회, 매도인과 매수인의 가족관계증명서 신청 등등. 허위매매라고 의심할 별다른 단서를 찾기 어려웠다. 다음 기일 결심하겠다고 하니 원고대리인이 마지막으로 이 땅에 대한 재산세 납부내역을 조회해 달란다. 반발하는 피고대리인에게 이제 마지막이라는 다짐을 주고 신청을 받아들였다.

뜻밖에도 3번의 재산세 납부 장소가 모두 매도인인 채무자가 살고 있는 서울 동작구의 동네 우체국이다. 납부 시간도 오전이다. 대전에 살고 있는 피고가 왜 아침부터 서울 동작구에 있는 채무자 동네 우체국까지 와서 재산세를 납부했는지 답할 차례다. 그냥 서울 가는 길에 우연히 납부했단다. 그런데 피고의 다른 재산세는 모두 대전지역의 은행에 납부되었다.

재산세 납부 장소라는 사소한 문제에서 진실이 드러난 사건이다. 원고승소 판결에 대해 피고는 항소하지 않았다. 풍문에 의하면 피고와 채무자는 군대에서 친해진 동기 사이였다고 한다.

재판을 하다보면 진실을 알아내기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거짓을 진실인 양 숨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느낄 때가 많다. 진실은 아주 사소한 점에서도 모순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진실의 무모순성’이다.

초짜 변호사의 저돌적인 성실성과 성동격서(聲東擊西)와 같은 절묘한 기지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