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죄와 벌
이은경 변호사(법무법인 산지)
개업 초창기에 삶보다 죽음이 더 간절했던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2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고아원을 전전하면서 오로지 배고픔을 채우려는 일념으로 유년기를 보냈다. 구걸로 연명하다가 소매치기 일당에 붙잡혀 모진 매를 맞아가면서 ‘기술’을 배웠고, 교도소를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인생 절반을 갇혀 지낸 그 사람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는지 죽음으로 ‘빚’을 갚기로 했다. “화장해서 꼭 넓은 곳에 뿌려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새벽녘 창살에 목을 맸다. 사지마비 진단 후에도 같은 행동을 두어 번 반복했고, 머리를 철창에 부딪쳐 자해를 하기도 했다.
나는 또다시 자살을 시도할지 모르니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 사람을 변론했다. 그 사람을 만나면서 ‘과연 나라면 다른 선택이 가능했을까’ 의문이 들었다. 죄와 벌에 뒤엉킨 그 사람의 인생에도 구원이 있단 말을 해주고 싶었다.
법대 입학 첫해던가, 젊은 나이인데도 죄와 벌을 논하는 형법에 유독 마음이 끌렸다. 그래선지 30여년이 흐른 지금도 형사변론을 적잖게 한다. 물론, 높은 담벼락에 둘러싸인 그곳도 종종 들른다. 흉악범이든, 누명을 썼든 그곳에는 한결같은 간절함이 있다. 언제던가, 교도소 담벼락 안은 ‘들킨 죄인’이, 밖은 ‘안 들킨 죄인’이 득시글거린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럼 ‘안 들킨 죄인’인 내가 ‘들킨 죄인’인 그들을 변호하는 셈인가? 그런 것도 같다. 내가 늘상 부닥치는 치명적인 진실은 인간은 예외 없는 죄인이라는 거다. 나 또한, 끊임없는 죄인이다. 내 힘으론 결코 선에 도달할 수 없다는 깊은 절망 앞에, 종종 머리를 조아린다.
그렇다면, 죄와 벌은 조금 두려운 영역이다. ‘과연 죄가 맞는가, 진정 벌이 합당한가’는 보통 어려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죄’를 절제하는 가장 큰 영향력이 ‘벌’이라는 법의 통제일 거다. 그렇다. 엄정한 법집행도, 엄정한 기강확립도 다 좋다. 다만, 단죄를 하든, 단죄를 받든 이 두가지는 반드시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나의 인식은 유한하다’는 게 하나이고,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게 둘이다.
‘나는 절대 틀릴 수 없다’는 게 거짓이고, ‘나도 틀릴 수 있다’는 게 참이다. 이 단죄의 고통을 짊어진 게 법조인의 숙명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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