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연합뉴스) 김동철 기자 =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에 악용된 은행 통장의 주인들이 제3자로부터 대가를 받은 정황이 없더라도 사기 피해액 전액을 반환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전주지법 민사2단독 이재근 판사는 21일 이모(48.여)씨가 A(50.여)씨와 B(50.여)씨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소송에서 "A씨와 B씨는 원고에게 각각 2천100만원과 2천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지난해 12월 경찰관을 사칭하는 신원미상자로부터 "다른 사람이 주민번호를 도용했으니 수사를 위해 돈을 송금하라"는 전화를 받고 2차례에 걸쳐 A씨 등 명의의 계좌로 4천100만원을 송금했다.
이후 전화사기를 당한 것을 뒤늦게 안 이씨는 A씨 등의 계좌로 입금된 자신의 돈에 대해 가압류해 놓고 부당이득금 반환소송을 냈다.
이 판사는 판결문에서 "피고들은 제3자의 부탁으로 은행계좌를 개설해 통장을 건네줬을 뿐 보이스피싱을 공모한 점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현재 금융체계상 언제든지 본인 확인 등의 절차만 거치면 돈을 인출할 수 있는 접근권이 인정된다"며 "피고들이 범행을 공모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피고들이 자신들 명의의 예금 계좌에 입금된 돈을 출금ㆍ사용할 수 있으므로 이익을 얻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 판사는 이어 "피고들이 원고와는 어떠한 원인 관계나 법률 관계도 없이 제3자의 보이스피싱 행위 때문에 이득을 얻어 '법률상 원인 없이' 원고의 재산으로 인해 이익을 얻은 경우에 해당해 원고가 손해를 입었음이 명백하다"고 판시했다.
법원 관계자는 "통장을 사고판 관계가 인정되거나 소재가 불분명한 대포통장 명의자들에 대한 민사상 책임을 지게 한 판결은 있었지만 이번 판결은 대가를 받은 정황이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피고인들에게 부당이익금 반환을 명령한 이례적인 판결"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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