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음
내려놓음
이은경 변호사(법무법인 산지)
나는 어려서부터 치열한 삶을 추구했다. 느긋함과는 좀 거리가 있었고, 시간의 낭비를 두려워했다. 내 모토는 심지어 ‘짧고 굵게!’였다. 참 희한하다. 사람은 생각대로 사는 모양이다. 지금도 때론, 치열한 승부수를 둔다. 물론, 치열함이 ‘열정’과 ‘끈기’로 승부를 볼 땐 자부심도 컸다. 그런데, 언제부턴지 ‘완벽’과 ‘인정’이란 두가지 어리석음에 집착하는 날 마주봐야 했다. 참 불행한 일이다. 더 절망적인 건 그 열심에도 불구하고 내 꿈은 더 멀리 도망친다는 거다.
얼마 전, 한 글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여자가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앞차가 급정거를 했다. 백미러를 보니 뒤차가 자기를 향해 전력 질주하고 있었다. 곧 죽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핸들을 꽉 쥔 채 온 몸이 경직된 자신이 보였다. 지금까지 그 자세로 인생을 살았단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 때도 그렇게 죽고 싶진 않았다. 여자는 핸들을 움켜쥔 손을 내려놓았다. 온 몸에 긴장을 푼 채 눈을 감았다. 사고는 났다. 그런데 별로 다치지 않았다. 아!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나는 깨닫는다. 치열함으로 세상을 바꾸어 보겠다던 인간의 오만함에 관하여! 그리고 한가지 진실에 직면한다.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는 것. 꿈이 크고 이상이 높다 한들, ‘움켜쥐는 삶’이란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내 뜻대로 되는 건 그리 많지 않고, 내 뜻대로 되는 게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라는 것, 다만, 내게 주어진 신의 선물이 ‘오늘’이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신의 현실이 ‘내일’이라는 것 말이다.
인생은 ‘큰 바다의 한 파도’이고, 삶의 부침은 ‘바다가 주관하는 파도의 움직임’이라 했던가? 한 가지 더하고 싶다. 바다를 움직이는 무한선의(無限善意) 말이다. 인생을 마음대로 조절할 순 없지만 가장 담담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할 순 있다. 때론, 큰 바다의 부요함 때문에 파도의 한계를 훌쩍 넘어설 수도 있다. 바로 이 무한선의 앞에 나를 내려놓을 때다. 원하는 걸 쫓아 달려왔지만, 그 대상은 항상 나로부터 도망치지 않았던가? 내려놓음은 눈에 보이는 것에 매달리지 말라는 걸 거다. 쫓는 두려움을 멈추고, 축복의 자석이 되라는 걸 거다. 그래야 나를 둘러싸고 있는 부요함이 내가 쫓지 않더라도 내게로 달려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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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知天命)이라 하든가. 나는 지금 50대다. 수많은 좌절과 실패의 경험이 내 지난날을 이끌어온 해결지향적 삶을 비워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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