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입법조사처(처장 임성호)가 한해 24만여건에 이르는 사기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처벌을 한층 강화하고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신고체계의 정비와 조속한 피해 회복을 위한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솜방망이 처벌과 범죄수익 회수 저조 등으로 재범률이 높아 피해를 양산하는 악순환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조계 전문가들은 현행 규정만으로도 충분한 처벌이 가능한데다 지나친 중형(重刑)주의 정책은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며 범죄수익의 철저한 회수를 통해 범죄 유발 요인을 제거하는 데 치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개인 간 채무 등 민사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데도 고소·고발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는 민사사건의 형사화도 억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기범죄 연 24만4000건… 동종재범률 38.8%= 국회 입법조사처는 최근 발간한 '2016 국정감사 정책자료'에서 "사기범죄는 기망에 따른 재산상 이익을 얻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파탄낼 수 있는 범죄로 사회적 해악이 크다"며 "2004~2008년까지 3만여명에게 4조원 상당의 금융다단계 사기 범행을 저지른 '조희팔 사건'은 대구와 경북, 부산, 경남 일대의 경제에 막대한 불이익을 끼쳤다"고 지적했다.

재범률 38.8%… 살인·강도·방화 등
강력범죄 비해 3배 높아

대검찰청 범죄분석(2015)에 따르면 2014년 사기범죄 건수는 24만4008건으로 인구 10만명당 475.4건이나 발생했다. 특히 2005~2014년까지 최근 10년간 발생비율이 16.1%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기범죄는 다른 범죄에 비해 동종범죄 재범률도 높은 편이다. 2014년 사기범죄 재범자 8만6577명 중 다시 같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38.8%인 3만3608명으로, 절도범죄의 동종 재범률 42%에 비해서는 낮지만, 살인·강도·방화 등 강력범죄(12.4%)에 비해서는 3배가량 높았다.

특히 범죄수익 회수율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현금과 현물 등 사기범죄로 인한 재산피해 총액은 8조44억원에 이르지만, 회수된 금액은 1%가 채 되지 않는 730억원에 그쳤다. 입법조사처는 "사기범죄 중 재산피해액을 전부 회수한 경우는 3.5%에 불과했다"며 "94.8%는 사기범죄의 수익금을 한푼도 회수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피해회복 지원체계 등 마련해야= 입법조사처는 "사기범죄의 경우 지속적인 증가추세에 있고 재범률이 절도죄만큼이나 높은 편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형량은 대부분 양형기준에서 정한 범위의 하한에 근접하고 있고 단기실형이나 집행유예가 내려지는 비율도 상당히 높다"며 사기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처벌 강화와 함께 △범죄를 사전에 발견하고 예방하는 신고체계 정비 △사기피해를 조속히 회복할 수 있는 지원체계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 양형기준으로 충분… 
범죄수익 철저 회수가 효과적" 지적도

서울의 한 로스쿨 교수도 "형량을 높인다고 사기범죄가 줄어든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사기범죄로 인한 피해가 큰 경우 가정이 파탄이 나는 등 후유증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기범죄에 대한 형량이나 양형기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며 "사기범죄의 형량은 피해 규모에 비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형주의 일변도의 형사정책은 위험하다는 지적도 많다.

오영근 한양대 로스쿨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고소율이 높은 이유 중 하나는 민사사건으로 가져가야 할 문제를 형사사건으로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인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사기범죄"라며 "범죄로 인한 피해 회복은 형량을 높인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범죄통계만으로 형량이나 양형기준을 높이는 것은 성급하다"고 지적했다.

노명선(57·사법연수원 18기)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도 "서민들을 속여 재산을 뺏는 것을 엄단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사채업자들이 서민들에게 법의 올무를 뒤집어 씌워 악의적으로 사기범으로 몰아가는 식의 이른바 '만들어진 사기범'들도 많다"며 "처벌 강화에 앞서 이들을 어떻게 가려낼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사기 범죄의 법정형과 양형기준은 다른 범죄와의 균형, 각종 특별법의 사기 관련 형사처벌 규정 체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할 문제"라며 "사기범들로부터 범죄수익을 철저히 회수해 피해 보전 등에 쓰도록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14년 재산피해 총액 8조 44억…
회수액은 1%에도 못 미쳐

서울의 한 부장판사도 "사기범죄의 재범이 증가하는 원인이 법정형이나 양형기준이 낮아서 그렇다라고 보기 어렵고, 다양한 사회·경제적 원인을 같이 검토해야 한다"며 "현재 양형기준으로도 전과에 따른 가중처벌을 하고 있어 충분한 엄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형법상 사기죄의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되며, 상습범일 때에는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된다. 또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사기범죄 수익이 5억원 이상~50억원 미만일 때는 3년 이상, 50억원 이상일 때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과 함께 범죄수익에 상당하는 벌금을 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