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을 통한 효율적인 민사사건관리를 위해 신모델로 야심차게 도입됐던 ‘사건관리부’가 유명무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통계에 따르면 작년 상반기 동안 사건관리부를 운영하고 있는 법원의 사건처리기간, 실질상소율, 실질조정·화해율이 사건관리부가 없는 전국 법원의 평균실적보다도 저조한 성적을 거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지난 2006년초 서울서부지법과 대전지법을 시작으로 3년간 순차적으로 전국 8개 법원과 지원에서 시범실시됐던 사건관리부가 존폐의 갈림길에 놓였다.

◇ 사건관리부는= 일명 ‘문지기 재판부’라고도 불린다. 민사 중·고액 단독사건(소가 2,000만원 초과~1억원)을 1차적으로 배당받아 간이한 사건은 직접 처리하고, 그 이외의 쟁점이 복잡한 사건들은 본안재판부로 재배당한다. 본안재판부가 구술변론을 집중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2006년 사건처리 신모델로 도입됐다. 사건관리부 내에는 상설조정위원회가 있어 화해 해결이 가능한 사건은 신속하고 변론없이 해결할 수 있도록 제도화 되어있다.

당초 대법원은 3년간 시범실시 한 후 전국 확대여부 등 사건관리부 운영에 대한 지침을 내리기로 했다. 그러나 2008년 시범운영기간이 끝났으나 대법원이 제도 유지여부에 대한 명확한 방침을 내려주지 않아 일선 법원에서 일반직원 정기인사를 앞두고 직원배치 등 업무에 혼선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관리부는 공시송달 판결이나 무변론 판결과 같이 간이한 사건의 경우 참여관이 직접 작성한 초고를 판사가 검토한 후 선고하는 방식으로 업무가 이뤄진다. 따라서 참여관을 비롯한 일반 직원의 역할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직원의 적절한 배치가 제도성패에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

◇ 엄청난 인적·물적비용 투입했으나 성과 저조= 서울중앙지법의 경우 현재 1명의 부장판사와 8명의 단독판사가 모두 17개의 사건관리 단독재판부를 담당하면서 사건관리를 하고 있다. 참여관 등 직원들의 업무수행 능력이 제도성패에 결정적인 만큼 법원은 성공적인 사건관리부 운영을 위해 지난해 3월과 9월 1달 보름 가까이 매주 2회씩 부장판사들이 200여명의 참여관들을 상대로 사건유형별 요건사실 및 입증책임을 강의하기도 했다. 또 시범재판부 및 사건관리부를 중심으로 민사실무연구위원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매주 사건관리 실무연구 사례발표회를 개최하는 등 제도성공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이런 인적·물적 비용투입에도 불구하고 사건처리속도 단축 등 당초 기대했던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중앙지법 사건관리부의 한 판사는 “이론만 놓고 보면 본안재판부에서 단순한 사건을 처리하는 데 허비하는 시간이 단축돼 사건처리가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이뤄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건처리속도에 별 변화가 없었다”며 “사건관리부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냥 조정을 많이 하는 소액단독판사와 같은 느낌으로 업무에 있어 전혀 효율적인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난해 11월말 전국의 사건관리부에서 일하는 판사들이 모여 각 법원의 사례를 발표하는 기회를 가졌는데, 성과가 좋다고 발표한 법원도 지원장이 직접 나서서 사건을 단독으로 많이 처리해 일시적으로 성과가 좋았던 것이어서 ‘사건관리부’라는 제도자체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있는 케이스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 각 법원, 제도가 아닌 사무분담의 차원에서 운영할 예정= 이처럼 법원차원에서 사건관리부에 대한 통일적인 지침을 내려주지 않자, 일선법원은 일단 사건관리부를 제도가 아닌 사무분담의 차원에서 각 법원상황에 맞게 운영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법은 저조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일단 사건관리부를 유지하기로 잠정적으로 정하는 대신 현재의 17개의 사건관리재판부를 11개로 축소운영하기로 했다. 다만 하나의 재판부 내에서 사건관리와 본안사건처리를 함께 하는 ‘시범재판부’를 현재의 8개에서 17개로 확대시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올 2월 인사이후에는 의료, 지적재산권 등과 같이 전문재판부를 제외한 모든 중액민사단독재판부가 시범재판부 형태로 운영될 예정이다. 법원관계자는 “현재 고액민사단독의 경우 어느 범위까지 시범재판부로 운영할지를 두고 논의 중”이라며 “고액민사단독 재판부 전부를 시범재판부로 운영할지 아니면 고액은 전부 다 제외할 것인지 검토중에 있다”고 말했다.